<전문가칼럼> 공감과 동감

공감(共感/empathy)은 남의 감정이나 주장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감정의 상태이다. 그리고 동감(同感/sympathy)은 남의 감정이나 주장에 대하여 자기도 같다고 느끼는 감정의 상태이다. 동감은 공감보다 더욱 친밀감을 가진다. 상대방과 같은 경험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동감은 부부나 친구가 나눌 수 있는 감정의 상태이다. 반면에 공감은 상대방의 경험을 같이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상태이다. 즉, 동감은 서로 ‘같음’을 전제로 하며, 공감은 서로 ‘다름’을 전제로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울며 돌아왔을 때 부모가 화를 내며 하는 말, “어떤 놈이 그랬어?” 라고 하면 동감이다. 아이와 같은 마음이다. 동감은 ‘무조건 네가 잘했다, 나는 네 편이다’는 뜻이다.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동감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한때 힘이 될 수는 있지만 감동은 주지 못한다. 반면,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니 또 나쁜 짓 했지?” 라고 묻는다면 반감이다. 아이의 감정에 반하는, 반대되는 감정이다. 반감은 아이에게 거부감을 주며 오히려 화를 더 부추길 뿐,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부모들이 아직도 이러고 있다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아하, 네가 참 억울하겠구나, 참 분하겠구나. 얼마나 힘드니” 이렇게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이야 말로 진정한 힘, 위로와 격려가 된다.

 

공감과 동감, 두 가지는 비슷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대하는 자세는 큰 차이가 있다. 공감은 상대방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경청할 수 있다. 반면에 동감은 상대방의 아픔에 대하여 같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하여 행동을 함께 하며,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공감보다는 동감이 더욱 친밀하고 적극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감은 공감에 비해 주관적이다. 동감이 가진 주관성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상담에서는 동감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치우칠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이 나서는 동감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공감의 자세가 유익하다.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할 때에 나의 경험이 앞서게 되면 나의 주장과 방법이 앞서게 되고, 결국은 내가 해결하려고 나서다 보면 상대방의 감정을 깊이 살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을 100% 수용하기 위하여 자신의 입장을 0%에 놓는 것이고, 동감은 자신과 상대방이 하나 되기 위하여 50% vs 50%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상담가의 입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는 공감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동감의 마음이 필요하다.

신앙적인 영적훈련에도 공감과 동감 둘 다 필요하다. 신앙 주체의 뜻에 보다 깊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공감의 단계를 거쳐 동감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고정관념과 집착을 내려놓고 영적주체의 뜻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공감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전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이다. 그러기 때문에 공감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상대방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나의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메시지가 중요하다.

결국 공감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이해(理解)’라는 단어는 영어로 표현하면 ‘Understand’이다. 즉, under(낮은 곳)에서 stand(서다)의 합성어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에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감이 어려운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기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감에 더 익숙하다. 때로는 해결하려고 상대방에게 건 낸 말이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상대방의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은 자신의 정서적 건강에도 좋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아픔을 자신의 마음속에 담고 동일시 하다보면 상대방의 고통을 자신도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비난과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동일시되어 파고들면 우리의 마음은 분노와 두려움의 풍랑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상대방의 문제를 공감하면 나는 상대방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 상대방의 요동치는 감정의 어려움을 함께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공감의 능력이다. 공감이 동감보다 어려운 것은 나의 생각과 주장을 앞세우고 싶은 내면의 속성이 앞서기에 그렇다.

 

공감하는 상태가 나의 내면에 지속되면, 상대방의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나의 내면의 상태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공감이 영적훈련에 더욱 필요한 것은 나의 주장을 멈추고, 영적주체의 뜻에 더 나아갈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김기평교수(gpkim2970@daum.net)

GP Kim 글쓴이

댓글

    김수암

    (2020년 8월 10일 - 9:02 오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공감과 동감. 얘기할 때 상대방 얘기를 들으면서도 내 얘기를 언제할까..하는 생각이 자주드는데 공감과 동감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거구만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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