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상 막걸리를 분말막걸리로… 인생 2막을 연 이정희 대표의 도전”
[에파타뉴스=김포] 지난 10월 3일,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업회사법인 하얀술 주식회사(대표 이정희, 이하 하얀술)를 찾았다. 이 회사는 전통주 막걸리를 제조하지만, 조금 특별하다. 막걸리를 분말 형태로 만들어내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다.
“술은 문화이자 역사다. 나는 그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었다.” 이정희 대표의 첫마디였다.
암과 빚더미, 그리고 다시 일어선 삶
이정희 대표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2004년, 40대에 암 선고를 받았고,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까지 짊어져야 했다. 병마와 빚더미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낸 게 결국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18년간 이어진 고된 싸움 끝에 2022년, 마침내 모든 빚을 청산했다. 그 순간 지갑 속에 남은 돈은 3천 원뿐이었지만, 마음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막걸리와의 운명 같은 만남
하얀술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서 싹텄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 아이들을 서당에 보내면서 전통 책걸이 의식을 지켜본 것이 계기였다.
“아이들이 전통을 배우는 모습을 보며,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게 바로 막걸리였죠.”
이정희 대표는 국내 유일의 밥소믈리에로, 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막걸리를 선택했다. 단순히 술을 빚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38종의 술을 실제로 재현하며, 술을 약재와 연결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술을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약이자 문화”로 바라본 것이다.
20년 연구 끝에 태어난 ‘분말막걸리’

막걸리의 가장 큰 한계는 짧은 유통기한이었다. 이정희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려 4년간 실험을 거듭했다. 전환점은 해외에서 들여온 와인 파우더 기술이었다. 와인의 향을 보존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막걸리에 접목했다.
“동결건조, 냉각건조…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수없이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분말막걸리를 만들어냈을 때, 20년 세월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그 결과 탄생한 분말막걸리는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해외 수출에도 최적화된 혁신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출로 승부수… “300억 매출도 가능하다”
하얀술의 전략은 명확하다. 전량 수출이다. 국내 시장의 저가 경쟁을 피하고, 막걸리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해외, 특히 유럽을 첫 무대로 삼았다.
초기 매출은 5천만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약 3억원을 예상한다. 이 대표는 “제품이 제대로 자리 잡으면 연 매출 300억 원도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는 원재료 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농협과 협의를 진행 중이며, 막걸리를 한 단계 고급화해 위스키급 술로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제품 다변화를 통한 안정적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를 향한 도전
하얀술은 이미 해외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금까지 샘플 발송 및 거래를 통해 매출이 발생한 국가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이다. 향후 목표는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이다.
“우리는 단순히 술을 파는 게 아니라, 한국의 전통문화를 수출하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에서 당당히 존중받는 하얀술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자 회사의 비전입니다.”
“술은 나의 인생책”
하얀술의 성장 이야기는 단순한 기업 성공담이 아니다. 암투병과 빚더미를 딛고 분말막걸리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정희 대표 개인의 인생 재기록이기도 하다.
“저에겐 술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책이자 삶이에요. 동의보감을 파고들며 술을 공부했고, 결국 제 인생도 술처럼 발효된 거죠.”
하얀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옥주 경영지도사와 함께 경영 안정과 해외 확장을 도모하며 분말막걸리를 세계 시장에 내놓고 있다. 그 도전은 한국 전통주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강호익 기자/경영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