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역지사지 합시다!

“易(바꿀) 역 地(땅) 지 思(생각할) 사 之(갈) 지”
역지사지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유래를 살펴보면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이다.
맹자는 “우(禹) 임금과 후직은 태평성대에 세 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아서 공자가 그들을 어질게 여겼으며,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는 난세에 누추한 골목에서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비참할 정도의 가난 속에 살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태도를 잃지 않아 공자가 그를 어질게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맹자는 “우와 후직, 안회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모두 같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평하였다. 이는 곧 안회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우 임금이나 후직처럼 행동했을 것이며, 우 임금과 후직도 난세에 살았다면 안회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역지즉개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한다’는 뜻의 〈인익기익(人溺己溺)〉과 비슷한 뜻이며,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댄다’는 이기주의적인 〈아전인수(我田引水)〉’는 그 반대 의미이다.

역지사지를 현시대에 응용하여보자. 지난 2020년부터 3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되면서 날로 인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자. 감염확진환자나 격리대상자들이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입장 바꿔서 내가 만약 그런 처지라면 어떤 마음일까? 누구라고 감염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於人。”
자공이 물었다. “평생을 지니고 다닐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것은 서(恕)이다. 네가 원하지 않는 바는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논어 12편 안연편(顔淵篇)>

“내게 그런 핑곌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은 넌 웃을 수 있니.”
김건모, <핑계(1993)> 가요의 가사일부 구절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 상대편의 처지나 형편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즉, 입장바꿔 생각해보라는 뜻. 영어로는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place/position이라 한다.
‘이해’라는 단어는 영어로 하면 ‘understand’이다. 이해의 뜻은 ‘under’ 낮은곳에서 ‘stand’ 서서 “상대방을 바라보아라”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말해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는 것은 ‘이해(understand)’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정확하게는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듯이 자신도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의미로, 논쟁에서 자주 사용되는, 아니 사실 분명히 따라야 하는 개념이다.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장 13절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게 되어있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긍휼함은 단순히 죄를 짓고 있는 상대방을 혀를 끌끌 차며 불쌍하게 여기는 수준이 아니고, 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동시에 그 사람을 자신보다 못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데, 기독교의 가르침 상 이런 마음은 사람 혼자의 힘으로는 가질 수 없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을 때에는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다 고만고만한 죄인인데, 그런 죄인을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에게 부어져 그 사람도 다른 죄 지은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자신도 선천적으로 같은 기질을 타고났고,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왔으며, 같은 마음의 상처들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자신도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다 고만고만한 죄인인 것이다. 또한 거듭난 이후에 죄와 싸우려고 해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좋지 않은 성향이 강할수록 그 죄와 싸우기 위해 큰 믿음이 필요하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행위로만 믿음을 평가할 수도 없고, 믿음이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믿음의 크기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은 하는 걸 어떤 사람은 못한다고 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교만에 해당하고, 실제로 믿음이 크고 사랑이 많은 사람은 자신보다 믿음이 작거나 믿음이 없는 사람을 봤을 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사람을 돕길 원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상대의 생각이나 그런 말을 하는 이유 등은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만 펼치면 그건 토론이 아니라 개싸움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각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갈등이나 논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상대방의 처지에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기적적으로 협의점을 찾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감정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물론 양측이 악의가 없다는 전제하에 협의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역지사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대학교 시사 토론 동아리로, 그 특성상 대부분의 팀원의 성향이 비슷해서 토론 주제를 정하고 사다리타기로 양 진영을 정하게 된다. 이때 사다리 잘못 타면 자신을 부정하면서 토론을 해야 하는데 이러다가 진짜로 의견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역지사지는 자신에게 적용하여, 성찰하고 남을 배려하는데 의미가 있다. 사람은 당해보지 않고선 절대 상대의 입장에 놓일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확신범의 경우에는 역지사지가 씨알도 안 먹힌다. 또한 근거도 없이 똑같은 행위라도 자신이 하는건 옳고, 남이 하는건 잘못됐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마치 ‘내로남불’식이다.

前 유튜브 크리에이터 유정호는 아래와 같이 말하기도 했다. “역으로 지랄해야 사람은 지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

어린이들은 역지사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어른들도 기겁할 만한 막말을 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가늠을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해결될 문제다. 지적, 자폐, 정신장애인, 치매 당사자들도 역지사지를 전혀 인지 못한다.

역지사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선 제대로 항의를 하여야한다. 상대방 배려하느라 자기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건 그냥 호구이고 호갱이다.
간혹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의 맥락으로 역지사지를 강조하면 그것을 니가족충이라고 해석하는 프로불편러들도 존재한다.

다음은 실생활에서 역지사지를 활용한 예시이다.
-역지사지를 통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렸다.
-영화에서 갈등이 있을 때, 역지사지를 실천하며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뉴스에서도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협상 시 역지사지를 통해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었다.
-역지사지를 통해 친구와의 오해를 풀고, 관계가 더 좋아졌다.
-역지사지를 실천하니, 고객과의 소통이 원활해졌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 역지사지 덕분에 팀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역지사지를 통해 동료와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가족 간의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역지사지를 적용해보니, 놀랍도록 효과적이었다.

결론적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헤아리는 중요한 원칙이다. 이 글을 통해 역지사지의 뜻과 의미, 그리고 실생활에서의 사용 예시를 살펴보았다. 우리 일상에서 역지사지를 적용하면 인간관계, 팀워크, 그리고 갈등 해결 등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뉴스, 드라마,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역지사지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으며, 상호간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결국, 역지사지를 실천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역지사지의 원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칼럼리스트 김기평 (gpkim@dju.kr)

GP Kim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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